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 기업의 존재 목적을 재정의하다

 

♦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로비 집단,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이하 BRT)은 미국 내 200대 대기업 협의체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모두 BRT의 일원입니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로비단체로,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출처: BRT


♦ 2019년, 기업의 목적이 재정의되다

1978년부터 BRT에서는 기업의 목적을 담은 지배구조 원칙을 발표해왔습니다. 이 지배구조 원칙은 꾸준히 수정되었지만, 기업은 주주를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2019년 8월 19일, BRT는 기업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합니다. 이 선언문에는 애플, 월마트 등 세계적인 기업의 CEO들이 서명했습니다.

기업의 목적에 대한 선언문 (요약)

  • 우리는 고객들에게 가치를 전달합니다. 고객의 기대를 넘어서는 미국 기업의 전통을 발전시키겠습니다.
  • 우리는 직원들에게 투자합니다. 이는 그들에게 공정한 보상과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춰 새로운 기술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는 일, 다양성을 포용하는 일들을 포함합니다.
  • 우리는 협력사를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대합니다. 우리를 돕는 크고 작은 회사들을 위해 좋은 파트너가 되어 헌신할 것입니다.
  • 우리가 속한 지역사회를 지원합니다. 우리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관행들을 포용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시민들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할 것입니다.
  • 우리는 주주를 위해 장기적인 가치를 창출합니다. 주주는 회사의 성장과 혁신의 기반이 되는 자본을 제공합니다.
  • 우리는주주들과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소통해 나갈 것입니다.

 

♦ 주주 자본주의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선언문의 중심 주제인 ‘기업의 목적과 책임’은 시대를 불문하고 뜨겁게 논의되어온 화두입니다. 기업의 목적에 대한 논의 중, 가장 영향력 있었던 것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그 기업의 이윤을 늘리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프리드먼은 기업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주체이자 이익단체일뿐이니, 정부가 정한 최소한의 규칙만 준수하면 된다고 피력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위 선언은 밀턴 프리드먼이 강조한 “이익·주주 우선주의”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주뿐만 아니라 고객, 직원, 협력사, 지역사회 역시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라는 관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해당 선언은 지금 이 시대가 단기적이고 재무적인 성과 창출, 주주 자본주의 중심의 가치관에서 벗어나
지속가능한, 장기적인 가치 창출을 목표 삼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 선언문에 대한 찬반 의견은?

BRT 선언에 대해 각종 언론사에서는 “미국 기업 역사상 전무한 중대 변화” “기업 존재 핵심 목적에 대한 상전벽해와 같은 인식 변화”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표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핵심 가치로 선언한 BRT 선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 역시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하버드 법학대학원(Harvard Law School, 이하 HLS)에서는 BRT 선언에 대해 “보여주기식 선언(mostly for show)”이라는 견해를 구체적인 증거와 함께 밝혔습니다. HLS는 2020년 8월경, 즉 BRT 선언이 진행된지 약 1년이 지난 후 해당 글을 게시했습니다.

 


출처: 하버드 게시글


결론부터 말하면 HLS에서는 
BRT 선언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라고 얘기합니다. 즉, 기업들이 BRT 선언에 서명했다고 해서 그것이 기업 내의 중대한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말입니다. HLS는 이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1. 첫번째 증거: 이사회의 승인이 없음

기업의 중대한 결정은 기업 권력이라는 피라미드의 가장 상위에 위치한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중요한 인수합병, 회사 내규의 수정, 기업 전략의 변화 등 기업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큰 사건들은 필수적으로 이사회의 논의를 거치게 되어있습니다. 만약 BRT 선언이 기업에 큰 영향력을 가지는 사건이라면, 이사회 또한 이 문제를 두고 논의하는 과정을 가질 것입니다.

이러한 전제하에 HLS에서는 BRT 선언에 서명한 CEO가 속한 기업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173개의 기업 중 48개 기업에 연락이 닿았고, 한 개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모두 BRT 선언이 이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조사 결과는 중요한 사실을 시사해 줍니다. BRT 선언에 대한 CEO의 서명은 기업의 공식 입장을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공식 입장이라면 당연히 이사회의 승인을 거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BRT 선언에 대한 서명은 그저 CEO의 개인적인 신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게 현실적이라고 HLS는 주장합니다.

2. 두번째 증거: 기업 지배구조 원칙의 변화가 없음

기업 지배구조 원칙(또는 가이드라인)은 이사회의 승인을 거친 기업 운영에 대한 공식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임원들이 따라야 할 일반적인 원칙이나 특정 조항을 포함하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기업 존재 목적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확인하고 싶다면, 기업 지배구조 원칙을 살펴보는 것 또한 좋은 방법입니다.

HLS에서는 BRT에 서명한 CEO의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 지배구조 원칙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HLS는 특별히 BRT 선언이 진행되었을 당시, BRT 이사회에도 몸담고 있던 CEO가 속한 기업 20곳을 선별했습니다. 조사 결과, 기업들 중 절반은 기업 지배구조 원칙에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전히 주주 우선주의 원칙을 지지하는 문구들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 주주 이익을 증대한다(promote the interests of shareholders), CVS

▶ 기업 주주 이익 극대화만을 위해 행동한다 (act solely in the best interests of the Corporation’s shareholders), Duke

▶ 장기적으로 주주 가치를 극대화한다 (maximize shareholder value over the long-term), Eastman


기업지배구조 원칙에 변화를 준 기업들조차도, 그 안에 이해관계자의 이익에 대한 언급은 했지만 주주 이익 극대화라는 궁극적인 목적에서 벗어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 ​BRT 선언이 그저 선언에만 그치지 않으려면...

이해관계자 중심적인 철학은 ESG 경영의 뿌리와도 같습니다. 이 철학이 기업 내에 깊이 뿌리내려야 ESG가 그저 단기적인 트렌드로 스쳐가지 않고, 기업 경영 전반에 녹아들어 다양한 ESG 성과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ESG가 뜨겁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ESG가 트렌드고,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에 ESG를 시작하려는 기업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속도보다 방향입니다. 왜 ESG를 해야 하는지, 그 중심에 자리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와 ‘장기적인 가치 창출’의 철학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루어질 때, 비로소 참된 의미의 ESG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자료>
1. Business Roundtable
2. Business Roundtable Redefines the Purpose of a Corporation to Promote ‘An Economy That Serves All Americans’ | Business Roundtable
3. 181 Top CEOs Have Realized Companies Need a Purpose Beyond Profit (hbr.org)
4. https://fortune.com/longform/business-roundtable-ceos-corporations-purpose/
5. Researchers say America's top CEOs didn't live up to their promises in Business Roundtable letter | Fortune
6. Was the Business Roundtable Statement Mostly for Show? – (2) Evidence from Corporate Governance Guidelines (harvard.edu)
7. Was the Business Roundtable Statement on Corporate Purpose Mostly for Show? – (1) Evidence from Lack of Board Approval (harvard.edu)
8. 사진출처: Photo by Rosie Steggles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