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불러온 변화, 재택근무
코로나가 터지고 난 뒤, 우리 주위에 생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유연근무제의 보편화입니다. 기존의 “9 to 6”에서 벗어난 다양한 근무제도는 “유연근무제”라는 단어로 통칭됩니다. 유연근무제에는 근로시간 단축근무제, 선택적 근무시간제, 재택 및 원격근무제, 탄력적 근무제 등이 모두 포함됩니다. 여태까지 유연근무제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있어왔으나, 실제로 활용되는 비율은 많지 않았습니다.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코로나는 기업들을 유연근무제를 도입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만들었습니다. 2015년도부터 유연근무제의 활용도는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고, 2020년도에 대폭 증가했습니다. 다양한 유연근무제 중, 가장 상승폭이 큰 것은 단연 재택근무입니다.
출처: 한국노동연구원
코로나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요즘, 기업들은 전염병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도입했던 재택근무를 이후에도 이어갈 것인지, 아니면 이전 근무형태로 돌아갈 것인지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이것은 시대의 과제인 디지털전환과 ESG경영 측면에서 모든 기업들이 한번쯤은 고려해야 할 사항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두루 살펴보고, 재택근무의 목적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와 개선방안 등을 다뤄보겠습니다.
재택근무의 기대효과
#1 긴 업무 시간에 비해 저조한 노동생산성 문제 개선
21년도 OECD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GDP per hour worked)은 41.7달러로 38개국 중 27위에 그쳤습니다. 이는 한국 근로자 한 명이 1시간 동안 생산하는 재화, 용역의 부가가치를 의미합니다. 한국은 OECD와 국제통화기금(IMF) 등에서 노동생산성 개선을 권고받을 정도로, 노동생산성 세계순위에서는 줄곧 하위권을 유지해왔습니다.
OECD 국가 노동생산성 순위 (출처: 중앙일보)
그러나 근로시간을 놓고 보면, 20년도 기준 한국인의 연간 근로시간은 평균 1908시간(OECD 평균은 1687시간)이었습니다. 이는 OECD 국가 중 멕시코(2124시간)와 코스타리카(1913시간)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치입니다.
한국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긴 업무시간에 비해 저조한 노동생산성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생산성이 낮은 상황에서 단순히 근로시간만 줄이는 것은 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재택근무 시행과 같이 근무제도를 개선하는 방법을 통해 노동 유연성을 확보해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2 통근이 불필요해지므로 길 위에서 낭비되는 시간 절약
통근시간은 삶의 질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통근에 소요되는 시간에 따라 수면, 여가활동 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OECD는 웰빙을 측정하는 지표로 통근시간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통근시간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임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은 수도권에서만 하루 평균 730명 이상이고, 출근에만 평균 1시간 27분을 보낸다고 합니다. 집에서 출발해 역까지 가고, 차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출퇴근에 약 3시간 정도가 걸리는 셈입니다. 한 달에 20일만 일한다고 가정해봐도 1년에 한 달(720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는 것입니다. 만약 재택근무를 시행한다면 이렇게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통근시간은 자연스레 사라지게 됩니다.
#3 근무제도 개선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 변화
영국의 환경단체 '플랫폼 런던'에 따르면, 출퇴근 교통이 개선되면 환경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합니다. 런던의 경우를 살펴보면, 런던은 자전거 길이 잘 발달돼 있음에도 직장인의 3분의 1이 승용차로 출퇴근을 합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의 노동자 2650만명 가운데 1670만명(63%)이 출퇴근시 승용차를 이용합니다.
출처: Unsplash
영국 레딩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주5일 중 단 하루만 근무형태를 전환해도 매주 11만7천톤의 온실가스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이는 연간 1300만대의 자동차를 거리에서 줄이는 것과 같은 효과라고 합니다.
재택근무의 반작용
#1 디지털 탄소발자국 증가
디지털 탄소발자국은 디지털 기기에서 와이파이, LTE 등 네트워크를 거쳐 최종 연결을 위한 데이터센터까지 서버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스마트폰에서 네트워크를 연결하고, 사진, 동영상 등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배출됩니다. 동영상 시청 10분에 1g, 이메일 한 통에 4g, 전화 통화 1분에 3.6g, 데이터 1MB 사용에 11g의 탄소가 배출됩니다. 1시간 동안 동영상을 시청하면 자동차로 1km를 주행할 때와 동일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게 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통계에 따르면, 2020년 2월과 비교했을 때 협업툴 팀즈(Teams) 사용자들의 주간 모임 시간은 252%, 모임 횟수는 153% 증가했다고 합니다. 평균 채팅량 또한 32% 증가한 결과를 보였습니다. 이렇게 재택근무로 근무제도가 전환될 시, 온라인을 통한 협업과 그에 따른 탄소배출량은 필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전기 사용량 증가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재택근무, 격리 등의 실내활동 증가로 인해 국민들의 에너지 소비 패턴 또한 크게 변화했습니다. 2020년도 전국 2천85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 중 49.9%가 "에너지 소비가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
근무활동에서의 탄소배출은 대략 난방 33.9%, 출·퇴근 28.3%, 냉방이 20.6%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때 직원들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으면, 냉난방으로 인한 탄소배출이 감소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을 살펴보면, 냉난방을 사용하는 곳이 사무실에서 집으로 옮겨간 것일뿐, 실제로 측정해보면 사무실에 있는 것과 비슷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전자폐기물 증가
20년도에 재택근무가 시작되면서, 관련 용품 판매량이 급증했습니다. 당시 매일경제의 통계에 따르면 PC마이크는 38%, PC카메라는 107%, 모니터 거치대는 212% 증가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전자기기 판매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년도와 비교했을 때 20년도에 노트북은 24%, 모니터는 17%가량 판매량이 증가했습니다.
한국뿐만 아닌 전세계에서 이와 비슷한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2021년 1분기 글로벌 노트북 시작 규모가 20년도 동기 대비 무려 81% 성장했다고 밝혔습니다.
글로벌 1분기 노트북 출하량 (출처: 뉴스원)
위와 같은 국내외 데이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재택근무 시행으로 인해 전자기기의 생산 및 구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른 결과로 전세계적으로 5천만 톤의 전자폐기물이 발생되고 있지만, 약 20%의 전자폐기물만이 재활용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매년 만들어지는 전자폐기물의 가치는 무려 625억 달러에 달합니다. 이는 대다수 국가들의 GDP보다도 많은 값으로, 재택근무 도입으로 인해 전자기기 구매가 늘어난다면 전자폐기물의 증가 역시 불가피할 것입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재택근무의 목적은 무엇인가?
위와 같은 장단점을 두루 살펴보며 재택근무 도입을 고려하기에 앞서, 가장 본질이 되는 재택근무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코로나 시대의 재택근무는, 업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목적이 주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즉 디지털전환과 ESG가 중심이 되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만약 기업이 이러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성장하며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는 것을 목표한다면, 기업에서 시행하는 재택근무 역시 해당 목적에 부합한 방향성을 지녀야 합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택근무를 시행하기 위해서 아래와 같은 사항들을 고려해보면 도움이 됩니다.
(1) 재택근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우선 하나의 제도를 단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입체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단순히 재택근무를 시행함으로써 따라오는 장점들만 강조되고, 부정적인 영향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 재택근무는 ESG가 지향하는 지속가능성이라는 목적에서 벗어난 채 단순히 기업의 홍보마케팅, 브랜딩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2) 재택근무를 활용하되,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려 노력하자
재택근무는 근로자들의 유연한 시간 활용을 통해 업무집중도를 향상시키고, 기업 입장에서는 관리비, 임대료 등 금전적인 부분에서의 절약이 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공간의 제약 없이 전세계의 인재를 채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근무제도입니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는 교통 혼잡 문제, 환경적으로는 출퇴근시 배출되는 탄소 배출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택근무를 잘 활용하되, 중요한 것은 그 이면에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함께 살펴보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한 내부적인 노력이 함께 행해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3) 모든 선택에 ESG를 고려하자
그렇다면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시작될 수 있을까요? 단순히 불가피하게 도입된 재택근무가 아니라, 환경과 사회를 고려하는 재택근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전 과정에 ESG를 고려하는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재택근무 도입 시, 각 부서 또는 개인의 상황에 맞게 재택근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재택근무로 인해 늘어난 디지털 탄소발자국, 전자폐기물, 전기사용량과 관련된 내용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논의하는 것도 좋습니다.
재택근무는 시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야 합니다. 조금 더 많은 대화와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이러한 뚜렷한 방향성을 견지해 나갈 때, 비로소 기업 내에 ESG가 지닌 진정한 가치가 점차 확산될 것입니다.
<참고자료>
1. Working From Home: The Sustainability Question by MoreThanNow - Issuu
2. Our Work-from-Anywhere Future (hbr.org)
3. Great Expectations: Making Hybrid Work Work (microsoft.com)
4. Is Remote Work Actually Better for the Environment? (hbr.org)
5. 코로나에 에너지 소비↑…TV·PC·냉방제품 사용량 증가 - ZDNet korea
6. 코로나19로 재택근무 관련 용품 판매량 증가 - 매일경제 (mk.co.kr)
7. 獨보다 576시간 더 일하는 韓, 노동생산성은 38개국 중 27위 | 중앙일보 (joongang.co.kr)
8. “출퇴근만 평균 3시간…1년에 ‘한 달’ 길 위에서 보낸다” (kbs.co.kr)
9. Stop the clock- The environmental benefits of the 4 Day Week by 4dayweekglobal - Issuu
10. “기후변화 또다른 해결사는 주4일 근무제” : 과학 : 미래&과학 : 뉴스 : 한겨레 (hani.co.kr)
11. 코로나 재택근무·원격근무 수요에…글로벌 노트북 판매량 81% 급증 (naver.com)